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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e Riding/투어

망쳐버린 태백투어

지난주 자전거캠핑을 다니면서 태백 부근에 좋은 길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강원도 산악도로를 캠핑 스타일로 다니는 것은 무리겠지.

그래, 이번엔 로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태백을 중심으로 몇개의 로드코스를 짜서 가민에 쑤셔넣고,

토픽 웨지 드라이백 안장가방에 공구, 충전용품, 패드크림 조금, 야간 라이딩을 대비한 라이트, 18650 2개, 미리 제단해 놓은 스포츠 테이핑 12줄, 비상식량 등을 쑤셔넣고,

14-28로 변칙 세팅한 카세트를 12-28로 다시 세팅하고,

세차시켜준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로사 로드를 깨끗이 씻겨주고,

...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투어 준비를 마쳤다.


7월 14일 아침,

1박2일이 될지 2박3일이 될지 어떤 코스를 탈건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아침 첫버스를 타고 태백으로 향했다.

코스는 태백 도착해서 밥 먹으면서 정하자...는 생각이었다.


무언가 조금 불편한 상황은 아침 첫버스에서부터 발생했다.

호계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보니 의외로 손님이 많아서 맨 앞줄 기사분 바로 뒤에 앉았는데,

오른쪽 1인석에 앉은 분이 신입 기사분인가 보다.

버스 기사분들도 신입은 OJT를 하는 모양이다.

운전하시는 기사분이 태백에 도착할 때까지 쉴새없이 얘기하느라 버스에서 부족한 잠을 메꾸려던 계획이 어긋났다.

대화 내용에서 영월, 고한, 태백으로 가는 첫버스가 그것도 주중에 사람이 많은지 알게됐다.

고한이 정선카지노와 가까워서 카지노 가는 손님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많던 손님이 나만 빼고 모두 고한에서 내렸다.


중앙고속도로 제천IC를 빠져와와 38번 국도를 달리는데 기사분이 고속버스, 시외버스 기사들이 도로를 제3영동고속도로로 부른단다.

38번 국도는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이 많고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끔 설계되어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전에 몽아와 정선 동강길에서 고성리를 넘어와 예미리에서 멋모르고 38번 국도를 달려 영월까지 간 적이 있다.


맨 앞자리에 앉다보니 이런 저런 대화까지 귓속에 쏙쏙 박히는 바람에 4시간을 고스란히 피곤한 상태로 보내고 태백에 내렸다.


터미널 부근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으면서 오늘의 라이딩 코스를 결정했다.

태백터미널~석개재~문의재~근덕~천기리~도계~태백터미널로 돌아오는 130키로 코스.


▼계획했던 라이딩 경로 (실제 라이딩 경로는 반대방향이다)


▼31번 국도에서 석포 방향으로. 조금 더 31번 도로를 달리면 육송정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좌회전해도 된다.


▼지난주 자전거캠핑 때 갑자기 나타난 끌바를 하게 했던 불미고개


불미고개를 지나 석개재로 향하는 길은 이미 지난주 달렸던 길이라 반갑기도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커브를 돌때마다 이정표를 볼때마다 특징있는 풍경을 볼때마다 기억이 난다.

이런 세밀한 기억은 자전거 여행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물론 세밀한 기억 중에는 업힐의 고통도 포함된다.

고랭지배추밭을 지나면서 경사도는 10%를 훌쩍 넘어 때로 15%를 넘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두려움이어서 더욱 겁이 났다.

그래도... 오늘은 로드인데... 끌바는 좀 그렇지...?

마지막 몇백미터는 정말 악으로, 필사적으로 페달을 돌려 간신히 끌바를 면하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 거의 탈진 상태로 한참 휴식을 취했다.



▼오늘도 그리 맑은 날씨는 아니다. 덥기만 허벌나게 덥다.


업힐의 고통 뿐 아니라 다운힐의 공포도 기억에 그대로 남아있다.

석개재에서 덕풍계곡 방향으로 내리막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브레이크를 단 2~3 초만 놓아도 속도가 70까지 붙는다.

석개재 다운힐은 5.5키로 구간동안 해발고도 650미터를 내려와 평균 경사도가 12%에 달하는 청룡열차급이다.


▼지난주에는 풍곡리에서 우회전하여 원덕(호산) 방향으로 갔었다. 오늘은 직진해서 문의재터널 방향으로.


풍곡리에서 신리까지 동활계곡을 따라 라이딩하다가 계곡물이 너무 시원해 보여 계곡에서 쉬고갈까... 몇번을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다.


▼신리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근덕 방향으로


신리교차로 바로 옆에 가게가 있어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어갔다.


가게 앞 파라솔에 앉아 콜라는 마시며 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 더운 대낮에 이미 소주 2명을 마신 남자가 가게 주인 아주머니를 상대로 연신 떠들어댄다.

들어주는 사람이 맞장구 쳐주지 않아도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가며 떠드는 통에 또 다시 본의아니게 대화내용을 들어버렸다.

어딜가나 있는 허풍쟁이들...


신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의재 업힐이 시작된다.

7%~8% 부근의 편안한 업힐인데, 날이 너무 뜨겁다.

그늘이 없어서 해를 피할데도 없고 그저 빨리 터널까지 가는게 상책이다 싶었다.


▼문의재터널. 얼른 저 시원한 굴 속으로 들어가야지.


문의재터널을 지나 거의 20키로 정도를 신나게 내려왔다.

정상 부근의 급한 커브 두어개를 제외하면 속도를 즐길 수 있는 완만한 커브가 대부분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다운힐의 쾌감을 느겼다.


▼동막 부근 양리샘터. 시원한 샘물에 머리를 적시니 살 것 같았다.


동막을 지나 근덕에서 다시 삼척으로 올라가기 전 배를 채워야 할 것 맹방해변으로 갔다.

이미 해수욕장을 개장해서 모래사장에 관광객을 맞을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막상 먹을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맹방해변


자전거를 되돌려 바로 옆 덕산해변으로 갔다.

맹방해변과 덕산해변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연결된다.


▼덕산해변


덕산해변에 있는 독도횟집에서 물회를 하나 먹고 한참을 쉬었다.

오후 4시.

10분만 가만히 있으면 살이 익어버릴 것 처럼 해가 뜨거웠다.


태백까지 57키로 정도 남아있고 남아있는 상승고도는 700미터 정도.

아직도 해는 충분히 남아있으므로 천천히 가도 될 것이다.


쉬면 쉴수록 늘어지는 몸뚱이를 일으켜세워 안장에 올랐다.

천천히 페달질을 하다가 속도를 올리려고 변속을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응? 뭐지?

아무리 조작해도 앞, 뒤 모두 반응을 하지 않는다.

케이블이 빠졌나...?

길가에 세우고 이리 저리 살펴보니 아무래도 Di2 배터리가 없는 것 같다.

헐... 이건 또 뭐냐...

배터리 충전한지 얼마 안됐는데...


딱 평지를 달릴 기어비에 맞추어 고정기어가 되어버린 로드.

뭘 어찌 할 수 있나.

집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맹방해변에서부터 자전거길을 따라 삼척터미널까지 가는 동안에도 조그만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이걸 석개재 오를때보다 더 힘들게 댄싱으로 올랐다.


삼척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안양까지 가는 버스는 없고 성남가는 버스가 12분 후 출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되어 버스가 출발하는데 손님이 나 혼자다.

동해를 들러서 성남으로 가는데 그나마 동해에서 2명 탑승.

기사 포함 총 4명.

여기서 오늘의 

3명의 손님을 태운 버스의 기사는 시외버스 타 본 역사상 최악의 기사였다.

급출발, 급브레이크, 급차선변경에 뽕짝 음악 찰지게 틀어놓고 전화질하며 운전하신다.


과속 운행 덕분에 예정시간보다 30분 당겨서 성남터미널에 도착.

자... 이제 집까지는 어떻게 가지...?

하오고개를 이 자전거로 어떻게 넘지...?

탄천합수부까지 갔다가 양재천따라 집까지...?

택시는 안 태워주기 십상이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모범 택시가 보였다.

목적지를 얘기하니 군말없이 타라 하신다.

아들이 학생때 도로싸이클 선수였다 하시면서 집까지 오는 동안 자전거를 주제로 대화하다가 잘 도착했다.


아침 첫버스에서부터 돌아오는 버스까지 피곤한 하루였지만, 마무리는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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